명절이 다가오면 집안 곳곳에 따뜻한 온기가 감돈다. 거실엔 가족의 웃음소리가 퍼지고, 부엌에선 바쁘게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그 풍경 한가운데에는 오랜 시간 전통을 이어온 음식들이 빠지지 않는다. 바로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강정’이다.
단순한 과자나 간식이 아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자손의 복을 빌며 만든 이 음식은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전통이다. 찹쌀이나 멥쌀을 바삭하게 튀긴 뒤, 조청이나 꿀로 감싸고 다양한 곡물과 견과를 묻혀 만드는 이 정성 가득한 음식에는 명절의 의미, 손맛의 정성, 그리고 집집마다 다른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기원과 상징적 의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졌다고도 하고, 고려시대 제례의식에 사용됐다는 기록도 있다. 문헌에 따르면, 제사상에서 빠지지 않는 과자류 중 하나로, 귀한 날에만 정성껏 만들어 올렸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특히 설날과 추석, 정월 대보름 같은 큰 명절에는 집안 어른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한데 모여 만들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넘어서, 가족 공동체가 정서적 유대를 나누는 소중한 의식이었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들어 바삭함 속에 달콤함이 살아 있고, 그 속에는 손맛과 함께 가족의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강정은 단순한 간식이 아닌, 가족의 역사와 정을 함께 담은 특별한 상징이었다.
내부링크-https://kwaveweekly.com/
만들기의 정성과 손맛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복잡한 제조 과정에 있다. 단순히 재료를 튀기고 조청에 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찹쌀을 불려서 말리고, 일정한 크기로 썰어 바삭하게 튀겨야 한다. 여기에 조청을 바르는 과정도 중요한데, 조청의 농도가 너무 묽거나 진하면 고루 묻히기 어렵고, 재료와의 조화도 떨어진다.
견과류나 깨, 콩가루를 묻히는 것도 하나하나 손으로 해야 하며, 일정한 압력을 가해 모양을 유지해야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전통 방식은 기계 없이 오로지 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손맛’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기계식 제조로는 흉내낼 수 없는 전통 강정만의 매력이다.
지역마다 다른 강정의 모습
전국 각지에는 그 지역만의 특색을 반영한 전통 간식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라도에서는 콩가루와 참깨를 듬뿍 묻힌 고소한 풍미가 두드러지며, 한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퍼지는 고운 고소함이 특징이다. 경상도는 쌀튀밥을 얇고 바삭하게 튀긴 후 단맛을 줄여 담백함을 살려내는데, 이 담백한 맛이 오히려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강원도에서는 메밀이나 옥수수 같은 곡물을 활용해 투박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식감을 즐길 수 있으며, 뒷맛이 고소하고 은은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충청도는 조청에 곶감이나 대추 같은 자연 재료를 넣어 은은하고 향기로운 맛을 낸다. 이처럼 각 지역의 농산물과 기후, 생활 방식이 어우러져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온 전통 간식은 한국 음식 문화의 다채로움과 지역 고유의 색을 잘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 이어지는 재해석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 전통 외에도 견과류 , 유과 , 현미 등 건강과 취향을 고려한 다양한 종류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저당 조청이나 천연 감미료를 사용하는 등, 건강 지향적인 종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명절 선물세트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정갈하게 포장된 수제 세트는 정성과 품격을 동시에 전달하는 선물로 각광받는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강정 클래스’라는 이름으로 전통 과자 만들기를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이는 단지 음식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문화를 배우고,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인 것이다.
강정에 담긴 철학과 정신
단순히 ‘맛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만든다’는 공동체적 정신, ‘정성을 들인다’는 손맛의 철학,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 나눈다’는 유대의 상징이다. 강정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완성되는 음식으로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다. 바삭한 식감 속에 담긴 마음은 명절이나 잔칫날, 특별한 순간마다 따뜻한 정서와 기쁨을 전한다.
현대 사회처럼 개인화되고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일수록, 이런 전통 음식 속에 담긴 느림과 배려의 가치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강정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삶의 온기와 연결을 되새기게 한다.
마무리하며
명절이라는 특별한 시간 속에서 정성과 손맛으로 빚어낸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이다. 그 안에는 오랜 세월을 이어온 문화, 가족 간의 유대,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히 과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조각의 통해 우리는 조상과 대화하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지금은 바쁘고 빠른 시대지만, 가끔은 시간을 들여 조청을 끓이고 쌀을 튀겨 강정을 만드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만들어 간식을 넘어,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누는 따뜻한 기억이 될 것이다.